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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소니: 두 거인의 오늘과 내일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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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가전 시장의 맹주는 누가 뭐래도 소니였다. 70년대 워크맨 신화를 터뜨린 소니는 이후 여세를 몰아 VCR과 텔레비전  시장까지 틀어쥐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름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가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영화와 음악 사업까지 진출, 하드웨어와 콘텐츠를 아우르는 강력한 ‘소니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권불십년이요, 달도차면 기운다더니 천하를 호령하던 소니도 90년대말을 기점으로 제국의 아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2천년대로 넘어와서는 급기야 음악 플레이어 시장은 아이팟을 앞세운 애플에, 가전과 디스플레이쪽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삼성전자에 허무하게(?) 역전당하는 쉽게 볼 수 없는 드라마가 연출됐다.

10년만에 자타가 공인하던 프리미엄 브랜드가 흔들릴 수 있는 것인가? 한번 세워진 브랜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들어왔는데 소니의 부침과 삼성전자의 급성장을 보고 있으려니 잘나갈때가 가장 긴장해야 한다는 순간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려대학교 장세진 교수가 쓴 <삼성과 소니>는 한시대를 풍미했던 소니는 어떤 이유로 기세가 꺾였고 변방의 OEM업체로 평가되던 삼성전자가 소니를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스타플레이어로 급부상했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소니와 삼성전자가 각각 취했던 주요 전략들이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직론적 관점에서 두 회사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향후의 잠재력 및 한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전략보다는 조직 문화가 소니와 삼성전자의 어제와 오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시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소니가 부진의 늪에 빠진 원인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소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아날로그에서 일궈낸 영광이 디지털 시대를 대비하는데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니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고 있는 기술 트렌드에 따라 기존 아날로그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디지털 신제품을 내는 것이 늦어지는 이른바 과거의 영광이 미래의 발목을 잡는 레거시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과거의 제품에 안주한 것이 새로운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를 등한시하게되어 오디오 사업 부문에서 경영성과가 부진한 주요 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소니는 그동안 부품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는 전체 가치 사슬을 직접 통제하는 경향이 강했다.그 결과 분야별로 많은 경쟁자와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카메라에서는 코닥과 캐논이, 컴퓨터에서는 델과 HP가, TV에선 필립스, 삼성, 중국 기업들이 소니와 경쟁하고 있다. 소니는 또 공개 표준보다는 독자적인 표준을 선호하는 편이다. 저자는 이점도 소니 쇠락의 원인중 하나로 꼽는다.


“독자적인 표준을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 실제로 블루레이를 DVD의 차세대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소니의 노력은 큰 비용을 수반하였다. 2006년 출시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블루레이를 장착하여 생산 비용도 높아지고, 출시시기도 늦어지게 되었다.  독자적인 표준을 추구하는 정책은 NIH 증후군과 같이 자신의 포맷이 아닌 다른 경쟁자의 기술 또는 산업 표준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한다. 이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시장 전체의 흐름과 역행하여 자신의 기술과 포맷만으로 제품을 개발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신제품을 개발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가 걸어온 길은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잃을게 많지 않았던 만큼 소니보다 빠르고 공격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코드를 맞춰나갔다. 공개 표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았고 일상재(Comodity)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비용 절감을 꾀해 경쟁우위를 추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뜰만하다 싶은 곳에 경영자원을 집중했던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여러 제품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므로, 아키텍처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소니에 비해 아날로그 제품에서 아무런 경쟁우위가 없었고 따라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던 삼성전자에게는 이런 디지털 혁명이 가전 사업에서 후발주자가 선도 기업을 추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삼성과 소니>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전략의 차이를 논한 부분이 아니었다. 애플 역시 독자 표준을 선호하는 쪽이었지만 소니와 달리 디지털 음악 제국을 건설했고 표준화와 비용절감에 근거한 규모의 경제 전략으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PC업체 컴팩이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HP로 넘어간 것은 전략만을 놓고 소니와 삼성을 논하는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삼성전자와 소니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전략보다는 조직 문화였다는게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조직 문화 관점에서 소니는 글로벌 전략을 제대로 추진할 여력이 부족했다. 단지 글로벌 기업이 되고싶었던 실효가 없는 서구식 지배구조를 갖춘게 소니를 어려움으로 이끌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소니는 이데이가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해서 서구적인 기업으로 개혁하고자 했으나 근본적으로는 너무나도 일본식 경영 스타일을 가진 기업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니는 중요한 고비때마다 사업부간 커뮤니케이션도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소니 오디오 사업부에서는 미니 디스크가 CD 다음 세대의 히트 상품일 것이라고 믿었고 MP3플레이어와 같은 대체 상품에 관심이 없었다.”는 저자의 말은 워크맨이라는 확실한 무기를 갖춘 소니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애플에 밀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반면 삼성전자는 달랐다. 삼성전자는 카리스마적인 리더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조직간 갈등의 소지를 크게 줄였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적으로 취한 전략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이같은 조직 문화가 앞으로도 먹혀든다고 보기는 미지수다.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취약한 사업부문인 비메모리 반도체, TV를 제외한 디지털 비디오와 오디오, PC, MP3 플레이어와 같은 최종 소비재들의 공통점은 창의력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높은 반면 삼성전자의 강점으로 알려진 속도전과 과감한 투자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에 오르게 되면서 더 이상 과거의 사업 모형은 적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소니와 비교해서 삼성전자의 기술과 제품의 특징은 효율성이 높고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기술은 소니보다 다양성이 부족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선도주자가 없을때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외부에서 영입된 기술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이나 재미 과학자의 공급이 부족하면 기술 습득이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앞으로 해외 M&A의 성과를 높이거나 삼성전자가 현재보다 더욱 글로벌화하여 외국인 직원의 기술 개발 능력을 포용하고 이를 운용할 수 있는 경영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삼성전자는 기술 및 신제품 개발에서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삼성전자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비교적 많은 분량으로 다뤄지고 있다. 대부분 조직문화에 대한 지적들인데, 삼성의 성공만 부각시키는 다른 삼성 관련 책들과 이책이 달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가 쓴 <이건희 시대>와 함께 다양한 앵글에서 삼성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으로 꼽고 싶다.

사실 <삼성과 소니>를 읽기전에는 교수님이 썼다는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딱딱하고 논문같은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좀 들었지만 기우였다.  내용이 비교적 쉽게 풀어져 있었을 뿐더러 읽는 재미도 많이 느껴졌다. 기업 역사나 조직 문화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관련글1] 천하의 소니는 왜 애플에 밀려났을까?
[관련글2] <아이콘 스티브 잡스> vs <이건희 개혁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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